블랙스완(Black Swan)이란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을 일컫는 단어로, 무조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건 아니고 양(+)의 블랙스완도 있을 수 있고 음(-)의 블랙스완도 있을 수 있는데요.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하면서 유명세를 얻은 이 시대 최고의 사상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가 복잡하고 위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불확실성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깊이 있고 철학적인, 하지만 아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다양한 관점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얻은 저만의 몇 가지 인사이트에 대해 공유해 보겠습니다.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읽어버린 책은 아직 읽지 못한 책에 비해 그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다"
움베르토 에코의 서재에는 약 3만권의 책이 있다고 합니다. 3만 권의 책이란 한 사람의 개인이 평생을 바쳐도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엄청난 양이죠. 사람들은 의심합니다. "과연 움베르토 에코가 저 많은 책을 모두 읽었을까?" 아직 읽지 않은 책에 대한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의심인 것이죠.
움베르토 에코에게는 아직 읽지 못한 많은 책들이 연구를 위한 도구일 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거나 보여주기 위한 전시품이 아닙니다. 나이를 먹고 지식이 쌓여 갈수록 자신의 서재에는 오히려 읽지 못한 책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어야 한다고 나심 탈레브는 말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지식을 개인의 자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래서 익숙한 것, 이미 알고 있는 것, 현재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관심들이 많죠. 반대로 아직 모르는 것, 그런 지식의 부재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돌발사태를 맞을 가능성 등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블랙스완을 겪기 전에는 말이죠.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므로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가진 것은 이미 가지고 있으므로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면 나에게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것이므로 주의를 기울이고 불확실성을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나심 탈레브는 이렇게 말합니다. "길을 건너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눈을 감고 길을 건너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세상에는 온갖 위험들이 존재합니다. 당장 집밖에만 나가도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변수들은 널려 있죠. 하지만 우리는 숙명적으로 위험을 완전히 회피하면서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상위의 포식자라고 하더라도 사냥에 나설 때는 항상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 없이 오랫동안 사는 것은 오히려 불행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투자라는 불확실성에 나의 소중한 종잣돈을 넣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죠. 완전히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어떠한 투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은 오히려 가장 위험한 결정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구분할수 있어야 합니다. 위험은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선택이 가능한 영역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10만 원으로 주식을 매수했다면 그 행위에 대한 최대의 리스크는 10만 원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탈 때는 다릅니다. 1000일 중 999일은 무사했더라도 단 한 번의 블랙스완으로 모든 것이 끝날 수도 있죠. 수많은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상호 간섭하기 때문입니다. 불확실성이란 이렇게 우리가 도저히 예상하거나 인지할 수 없는, 그래서 그런 위험이 존재하는지 조차도 인식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불확실성은 인식할 수 없으므로 완벽히 대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서재에 있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처럼 모르는 것에 대해 배우고 준비하려는 자세는 블랙스완의 출현 가능성을 늦추거나 줄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파도에 흔들릴 수는 있어도 가라앉아서는 안 되겠죠.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시골 암닭의 교훈
책에서는 칠면조를 예로 들어 불확실성과 증거의 부재에 대해 설명합니다. 저는 이 내용을 우리에게 친숙한 암탉으로 쉽게 풀어 보겠습니다.
암탉 얄리는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건강하게 자랐다. 매일 먹이를 주셨고 맹수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주셨고 추운 날과 더운 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정성껏 보살핌을 받았다. 얄리는 할머니의 이런 행동들이 오직 자신을 위한 선의에 기반을 둔 인생의 보편적인 규칙이라는 믿음이 날이 갈수록 확고해졌다. 얄리의 할머니에 대한 신뢰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얄리는 할머니에 대한 믿음의 수정을 강요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얄리는 완전히 다 자라 '가치 있는' 암탉이 되었다. 어느 날 할머니의 딸에게서 전화가 온다. 이번 주 토요일에 가족과 함께 내려오겠다는 내용이다. 할머니는 사위에게 먹일 저녁으로 어떤 암탉이 좋을지 둘러보다 얄리에게 주목한다. 얄리에게 오늘은 그동안 살아왔던 여느 날과 다름없다. 얄리는 이번 주 토요일 오후에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한다. 얄리는 어제까지의 사건들을 토대로 내일의 사건을 유추해 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얄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적을 것이다. 이 '적은' 것이 얄리의 모든 것을 바꿀지도 모른다.
토요일 오후 할머니는 식칼을 날카롭게 갈아두고 큰솥에 물을 끓이고 있다. 아직도 얄리는 평소와 다름없는 오후를 보내고 있다. 물이 끓고 딸이 올 시간이 되자 할머니는 얄리에게 다가간다. 얄리는 평소와 다른 할머니의 행동에 잠시 놀랐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할머니에게 몸을 맡긴다. 할머니의 다음 행동이 있기 전 다시 한통의 전화가 울린다. 사위가 어제 회식에서 삼계탕을 먹어 닭보다는 삼겹살이 좋겠다는 내용이다. 전화를 끊고 할머니는 솥에 불을 끄고 급하게 삼겹살을 사러 나가며 얄리를 놓아준다. 얄리는 그간의 사건들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여느 날과 같은 오후를 즐긴다.
이문제는 비단 얄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밥줄을 책임져 주는 사람의 손이 천천히 나의 목줄을 조이는 모든 상황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죠. 이러한 블랙스완의 출현은 얄리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상하거나 인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겸손하고 신중해야 하죠. 얄리의 경우처럼 '증거의 부재를 부재의 증거'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얄리는 여전히 살아있지만 얄리에게 다음번 블랙스완이 찾아올 확률은 매우 높을 테니까요.
사건은 항상 왜곡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수십 수백만 개의 변수들이 상호 간섭하고 개입합니다. 얄리의 입장에서 그전날 사위가 회식을 하지 않았고 삼계탕을 먹지 않았다면 얄리는 더 이상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모든 사건의 과정과 결과를 얄리만 모르고 있다는 것이죠. 이 이야기 속의 얄리는 우리 중 누군가 일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장모와 사위와 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극단의 왕국 VS 평범의 왕국
나심 탈레브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평범의 왕국과 극단의 왕국으로 나눕니다. 평범의 왕국에서는 하나의 개별적인 사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힘듭니다. 인간의 키와 몸무게, 하루 칼로리 섭취량 이런 것들이 평범의 왕국에 속합니다. 인간의 키가 크면 얼마나 크고 몸무게가 나가면 얼마나 나갈까요? 예를 들어 서장훈 같은 사람이 나올 수는 있지만 서장훈 한 사람 때문에 대한민국 성인 남성의 평균 신장에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길 수는 없습니다. 평범의 왕국에서는 키가 100미터 몸무게가 5톤인 사람은 결코 나올 수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극단의 왕국은 다릅니다. 운동장에 백명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가진 자산을 모두 더하면 자산의 평균값을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백명의 전체 평균 자산이 1인당 3억이라고 한다면 여기에 딱 한 사람만 추가해 보면 어떨까요? 바로 일론 머스크입니다. 22년 4월 기준 그의 자산은 한화로 약 265조 원입니다.
일론 머스크 단 한 사람의 자산 때문에 나머지 백명의 자산 평균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됩니다. 백명의 자산을 모두 합쳐도 일론 머스크가 보유한 자산의 하루 변동치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극단의 왕국입니다. 단 하나의 변수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극단값이 존재하는 곳! 우리는 어떤 왕국에 살고 있을까요.
평범의 왕국은 규모 불변적이고 극단의 왕국은 규모 가변적입니다. 평범의 왕국은 구성원이 전형적이며 유사하지만 극단의 왕국은 거인 아니면 난쟁이입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J.K 롤링은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글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빵사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고객이 한 명 늘어날 때마다 새로운 빵을 하나씩 더 구워내야 하죠.
녹음기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시골 작은 마을에 이름 없는 가수들도 제각기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돈을 벌 수 있었지만 녹음기가 발명되자 더 이상 초라한 시골 가수들은 설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또한 예전에는 아무리 유명한 가수라도 두배의 돈을 벌고 싶으면 노래를 두 번 부를 수밖에 없었지만 녹음기라는 기술의 진보를 통해 여러 번 노래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죠. 바로 규모 가변성이 생긴 것입니다.
예전에는 각자 제 몫의 시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경쟁자가 자신의 시장을 위협할 가능성은 드물었죠. 하지만 오늘날은 다릅니다. 혁신적인 기술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통신과 운송의 발달로 인해 전 세계가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재편되면서 규모의 가변성은 더욱 증폭되고 개인 간의 격차는 심화되고 있습니다. 극소수의 사람이나 기업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나보다 약간 나아 보이는 사람이 파이의 전부를 가져갑니다.
현대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전쟁도 평범의 왕국이었습니다. 적을 한 사람 한사람 찾아다니며 처치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 대비 전사자의 숫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엔 미치광이 독재자 한 사람이면 지구 상의 모든 생물을 멸종시킬 수도 있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재래식 무기로 침공한 것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소득 없는 전쟁에 지친 푸틴의 잘못된 결심이 실행된다면 우리에게도 블랙스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 큰 사건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규모의 가변성이 일어나야 합니다. 한 번에 300명씩의 청중을 모아놓고 같은 노래를 10번 부르는 것보다 한 번의 잘 녹음된 음원으로 75억 명에게 전파시키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죠. 온라인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콘텐츠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유튜브, 블로그, 쇼핑몰 등이 그렇죠.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 일대일로 대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콘텐츠가 대부분의 트래픽을 가져 가는 것은 어쩔수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평범의 왕국인 동시에 극단의 왕국입니다.
불확실성과 비선형이 판치는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남는 법에 대해 저자는 철학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워낙 방대한 내용이라 한 번의 포스팅으로 모든 내용을 소개드릴수는 없지만 책을 통해 제가 얻은 인사이트를 몇 가지 말씀드렸습니다.
서구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검은 백조 한 마리를 만나기 전까지 백조는 오로지 흰색임을 누구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이것은 경험에 의해 확립된 난공불락의 신념이었죠. 하지만 홀연히 나타난 검은 백조 한마리는 우리의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집착하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을 등한시할 때 블랙스완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안전과 성공을 꿈꾸죠. 나심 탈레브는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성공의 원리는 단순하다. 최대한 집적 거려라. 블랙스완이 출몰할 기회를 최대한 늘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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